나는 철학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아는 것이 많지 않고 틀린 내용도 많을 수 있으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공리주의에 대한 논의
Peter Singer의 견해에 대한 반박 (May 5, 2025)
D는 윤리학자 Peter Singer에 대해 소개하면서,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1과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2으로 구성된 그의 공리주의 견해에 대해 내게 알려주었다. 그는 모든 행동은 지역적인 행복의 관점에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전역적인 행복의 합계로 계산하여 어떤 행동을 할 지 선택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예컨대, 가까운 사람을 돕는 것이 30의 행복을 합계로 창출하고, 만리타지에 있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40의 행복을 창출한다면, Singer는 후자의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이는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서, 동물에 대해서도 효용은 같은 가중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Singer의 견해는 다윈(Charles Darwin) 이후 발전한 의식의 스펙트럼적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내 반박은 다음과 같다:
의식의 모호함
Singer의 의견에서 동물 해방의 주요 근간은 동물도 고통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는 동의하나 이는 인간만이 의식을 가진다는 데카르트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내 견해에 따르면 생명과 의식은 관념적으로 정의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왜 의식은 동물에게서만 정의되어야 하는가? 나는 반문하면서, “사람이 의식의 주체로 인정되어 동물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면, 왜 식물이나 단세포생물, 또는 생명인지 모호한 개체들, 예컨대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의 행복은 그러한 계산에 산입하지 않는가?” 하고 말하였다.
만약 Singer가 어떠한 이유를 근거로 그러한 계산은 동물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아주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플라나리아(Planarian)와 같이 동물인지 모호한 개체에 대해서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이를 산입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인지 역시 모호한 문제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의 모호함
행복에 대한 모호함도 모든 공리주의가 상속하는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이 모호하여 발생하는 문제이기는 하나, 편의상 관념적으로 행복을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고양감, 성취감 등으로 정의한다면, 이는 아마도 코카인이나 모르핀에서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3 또한 Schrödinger의 견해에 따르면4, 생명체는 다른 유기체의 질서를 흡수하는 파괴의 과정을 통해 생존하므로, 가장 빠르게 죽는 것이 고통을 최소화하고 전체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길이다. 따라서 나는, Singer의 공리주의에서 최대의 보상을 얻는 바람직한 방법은, 치사량의 모르핀을 맞고 빠르게 사망하는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D는 이에 반박하면서, 그것은 어떤 사람이 생존하면서 얻게 될 미래의 행복을 손실하는 효과를 가져오므로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되는 결과라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이는 최적화의 문제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데, 즉시 사망에 이르게 하지 않으면서 고양감의 합이 최대가 되는 모르핀의 투여 루틴을 찾아서 모든 인류에게 동시에 주사하여 최대의 고양감을 얻고 모두를 죽게 만들면 Singer의 공리주의 상에서 최대의 효용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였다.
Schrödinger의 견해를 이용한 반박
공리주의에서의 이러한 모호함의 문제는 나는 엔트로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모호한 행복이나 생명의 정의를 고수하는 것보다, 시스템이 무질서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최대한 늦추려는 것이 실질적인 공리주의에서의 선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