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장에서 동작하는 기계들이 여러 대 있다. 모두 잘 동작하지만 하나의 기계만 비가 오는 날에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기계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작업자들은 문제를 추상화하여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받아들인다. 예컨대 “저 기계는 비가 오는 날이면 게으름을 피운다.“와 같은 식이다.
그러나 그 기계가 종종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온 엔지니어의 관점은 다르다. 엔지니어는 기계의 동작 기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정밀한 확인 끝에 엔지니어는 기계의 부품 중 하나에 발생한 부식을 확인하여 원인을 진단한다. 산화된 부품을 제거하고 새 부품으로 제거하자 그 기계는 더 이상 비가 오는 날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기계는 더 이상 다른 기계들과 구분되지 않는다.
작업자와 엔지니어의 차이는 해당 기계의 기전을 low-level에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어떤 system에 대한 low-level 이해와, 그를 평가할 metric이 있으면 모든 system은 평가 대상이 되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system은 수리 대상이 된다. 기계의 개별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기계들은 숫자로 변환되어 단순화된다.
인간에 대한 low-level 이해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예컨대 음악에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성취가 부진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의 뇌를 정밀 검사한 결과 주변의 긍정적 평가에 대한 feedback loop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특정 화학 물질의 결핍으로 인한 것임을 확인하고 약물을 투여하자 아이는 음악에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개인의 성능 부진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독특한 사람들이나 부진한 사람들은 받아들이기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결함 있는 기전의 발현으로 이해되고 수리 대상이 된다.
문제는 metric이 잘못 정의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metric이 개체들을 oversimplify하는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무엇인가를 잘 한다는 것은 상대적이고, 시공간적으로 local하게 정의되는 개념이다. 이 기준에 맞추어 사람을 low-level에서 변형하고 성능을 개선하는 것은 global한 관점에서는 이상한 행동이다. 어쩌면 다르게 정의된 metric에서는 성능이 떨어지는 인간이 될 것이다.
중국의 전족(缠足)도 spatiotemporal한 미인을 만들기 위한 개선의 일환이었지만, 지금의 시선으로는 기이하다. 오늘날의 성형 수술도 그렇다. local한 metric에 맞추기 위해서 피부를 자르고 꿰매거나 새로운 물질을 몸 속에 집어넣기도 한다. 찰나에 향유할 거죽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고민없이 스스로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인류가, 제 자신의 성능 개선을 위한 지름길이 머잖아 눈앞에 나타났을 때 선뜻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